
맴맴맴맴맴~ “아아아아아아~~~”
봉구는 평상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입을 벌리고 소리를 냈다. 한참 곤충을 잡으러 다니다더위에 지쳐 집으로 돌아와서 땀을 식히던 참이었다. 아이들이 별로 없는 시골 마을의 여름은 왠지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개울가에 물고기와 가재를 잡으러 갈까 잠시 생각했지만 더 이상 돌아다니기엔 너무 덥고, 혼자노는 것은 금세 지루해졌다. “아~ 심심해애~ 뭐 재미있는 일 없나?” 봉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봉구는 시골길을 따라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수박을 베어 물었다.
그때 저 멀리서 지나가던 자동차 한 대가 마을 입구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 누구지?”
커다랗고 까만 자동차는 마을 어귀에 있는 이장 할아버지 댁으로 들어갔다.
궁금해진 봉구는 눈을 반짝이며 한달음에 이장 할아버지 댁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대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들어가지 못하고 까치발을 하고 담장 안 쪽을 들여다봤다.
할아버지 앞 마당에는 키가 크고 멋있는 아저씨가 트렁크에서 선물 보따리를 꺼내고 예쁜 아주머니는 할머니랑 얘기를 하고 계셨다. 아주머니 옆으로 제 또래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보였다. 하얗고 큰 눈에 남색 머리, 단정한 흰 셔츠에 남색 반팔, 반바지 양복이 멋져 보였다.
“앗! 눈 마주쳤다...”
소년은 봉구를 보고 미소 지었다.
그 때 봉구를 발견한 이장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아이고~ 봉구 왔구나! 이리 와서 예준이 형아랑 인사하렴. “
부끄러운 봉구가 쭈뼛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왔다.
“안녕. 나... 나는... 채봉구고... 저어~기 빨간 지붕 집에서 살아. 얼마 전에 생일 지나서 이제 11살이야... 형아는?”
“봉구 안녕~ 반가워. 나는 남예준이고 12살이야. 여름 방학이라 할아버지 댁에 놀러 왔어.”
“예준아 나가서 봉구랑 놀다 오렴~”
두 소년은 이장 할아버지 댁을 나와 논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 진짜 덥다. 혹시 여기 도서관이 있어?”
예준이 형이 먼저 봉구에게 말을 걸었다.
“응! 저쪽 길 끝에!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돼”
봉구는 신이 나서 예준이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향했다. 도서관의 오래된 서가에서 예준은 조용히 '고대 문명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그 책 재미있어 보인다…" 봉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예준은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 역사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가득해."
"나... 그 책... 형이랑 같이 읽어도 돼? 예준은 책장을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내내 역사적 사건들을 토론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소년은 형제처럼 친해졌다.
다음 날, 차분하고 조용했던 시골 마을이 살아나는 듯 점차 시끌벅적 해졌다. 조금씩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친척들을 만나 인사하는 소리, 음식 냄새... 여름 방학을 맞아 친척들을 방문한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 탓이다. 봉구도 덩달아 신이 났다.
어제 만났던 예준이 형을 만나러 이장 할아버지 댁에 갔지만 형이 집에 없었다.
심심해진 봉구는 돌아오는 길, 숲을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매일 보는 논, 밭과 달리 숲에는 항상 신기한 것들이 많았으니까.
수풀을 헤치고 조금 걸어 들어가자 처음 보는 소년이 바위에 앉아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발머리의 소년은 왕자님 같아 보였다. 소년은 오래되어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봉구는 슬며시 소년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소년이 고개를 들어 봉구를 바라봤다. “이것 좀 잡아줄래?” 갑자기 말을 건 소년때문에 놀랐지만 봉구는 가만히 소년이 가리키는 부분을 잡았다. 한참을 카메라를 들고 씨름하던 소년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다 됐다!” 금발의 소년은 환한 미소를 짓고 카메라를 들어 봉구의 사진을 찍었다.
“나는 노아야. 넌 이름이 뭐야?”
“나는 봉구... 채봉구...”
갑자기 사진이 찍혀 부끄러움에 빨개진 봉구가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봉구야, 아까 카메라 고치는 것 도와줘서 고마워! 아끼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고쳤어. 나는 여름 방학이라 외할머니 댁에 놀러 왔어. 너는 여기 살아?”
“응... 저기 느티나무 옆 빨간 지붕 집에...”
“이거 엄청 오래된 카메라 거든? 우리 할아버지가 쓰시던 것인데... 어렸을 때 찍어 주신 생각이 나서 내 손으로 고쳐보고 싶었어.”
숲의 곳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어보는 노아를 봉구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너도 찍어볼래?”
노아는 봉구의 손을 잡고 이것저것 카메라 작동법을 알려주었고, 두 사람은 숲속의 아름다움을함께 담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소년은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늦은 오후, 노아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느티나무 옆 강아지 집에 묶여 있던 도봉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린 강아지라 약한 노끈으로 살짝만 묶어두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봉구는 얼굴이 하얘져서 강아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쪼끄매서 다리도 짧은 게 어딜 간거야...흐윽...” 봉구가 울먹이며 이곳 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아다니던 그때 도봉구처럼 은회색의 머리칼을 가진 소년과 마주쳤다.
“왜 울고 있어? 무슨 일인데?”
빨간 눈의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봉구에게 물었다.
“강아지가... 강아지가 없어졌어...”
“그럼 같이 찾아보자! 내가 도와 줄게!”
두 소년은 마을의 각 집들과 마을 회관, 학교 근처 등 강아지가 있을만한 곳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날이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는데도 강아지는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원래 강아지가 있던 곳으로 가보자! 돌아왔을 수도 있으니까…”
은호는 울고 있는 봉구를 달래며 손을 꼭 잡고 강아지 집이 있는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느티나무 근처에 다다랐을 때, 어디선가 조그맣게 낑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 안 들려?” 은호가 흥분해서 말했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야아… 훌쩍… 난 모르겠는데…” 봉구는 하도 울어서 귀까지 먹먹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은호는 울고 있는 봉구의 손을 끌고 소리가 나는 개울가 도랑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기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아! 가보자!”
은호가 데려간 곳은 마을의 큰 개울가로 이어지는 작은 도랑이었는데, 중간에 움푹 패인 곳에 봉구가 그토록 찾던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울고 있었다. 깊이가 깊지는 않았지만 어린 강아지가 혼자서 올라오기엔 버거웠던 모양이다.
“도봉구우우우! 왜 여기 있어어… 한참… 으흑.. 형아가 한참 찾았잖아… 흐어엉~”
강아지를 품에 꼬옥 안고 집에 돌아오는 길, 그렇게 봉구와 은호는 친구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봉구는 마을 놀이터로 나갔다. 동네에 아이들이 늘어 친구들이 있을 줄 알았지만 아직 이른 시간인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혼자 그네라도 타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걸어가던 봉구의 눈에 처음 보는 소년이 보였다. 아침부터 찌는 듯이 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햇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태권도 연습을 하고 있는 소년의 동작은 강해 보이고 절도가 있었으며, 모든 움직임이 치밀하게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 큰 키에 까만 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단단해 보이는 팔과 다리… 크게 크게 지르는 동작… 소년의 움직임에 매료된 봉구가 저도 모르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한참을 지켜보던 봉구가 돌려차기를 하는 소년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우와아아아! 멋있다아…”
소년은 호기심 많은 눈빛으로 봉구를 바라보며 눈이 접히도록 해맑게 웃었다.
“안녕? 나는 봉구야. 너 태권도 정말 잘한다! 진짜 멋있어!”
소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고마워. 나는 하민이야. 여기 자주 와?”
“아니, 오늘은 친구들이랑 만나려고 왔는데, 아무도 안 왔어. 너는 여기서 자주 연습해?”
“응, 방학에 할아버지 댁에 내려온 후로 거의 매일 와. 태권도가 좋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항상 이렇게 연습해”
봉구는 하민의 열정에 감명받았다. 태권도 연습하는 모습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켜보는 봉구를 보고 하민이 먼저 말을 건넸다.
"태권도 배우고 싶어? 동작 몇 개 알려줄까?"
“정말? 그래도 돼?”
“당연하지~ 내가 알려 줄게! 기본 자세부터 시작해보자. 이렇게 발을 벌리고...”
하민은 봉구에게 기본적인 태권도 자세를 가르쳐주었고, 봉구는 하민이 알려주는 대로 열심히 따라하며 연습했다. 두 소년은 함께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같이 태권도 연습을 했다.
“잘하고 있어! 태권도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함께 단련시키는 거야”
봉구는 하민이가 태권도도 잘하고 마음가짐까지 멋있다고 생각했고, 하민은 어설픈 동작에도 자기의 가르침에 따라 땀을 흘리며 열심히 연습하는 봉구가 마음에 들었다. 두 소년은 금세 친해졌다.
여름방학이 한참 지나갈 즈음, 친해진 아이들이 봉구의 할머니 집에 아이들이 모였다. 12살 동갑 형아인 예준이와 노아, 봉구, 한 살 어린 은호, 키는 제일 크지만 막내인 하민이까지 모두 모이자 넓고 적막했던 집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봉구는 친구들과 함께 할머니 댁 창고에서 가지고 놀 장난감을 찾아보기로 했다. 할머니는 어릴적 봉구의 아버지와 삼촌이 놀았던 장난감들이 창고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뭔가 신기한 것들이 있을 것 같아! 우리 같이 찾아보자!” 봉구와 함께 모두 기대에 찬 표정으로 할머니 댁 뒤편에 위치한 오래된 창고로 향했다.
끼이이이익…
뻑뻑한 창고 문을 같이 밀어서 열자마자 먼지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은 어두컴컴했고, 여기저기 쌓여 있는 물건들 사이로 장난감을 찾기 시작했다. 예준이와 노아는 한쪽 구석에서 낡은 트럭과 기차 세트를 발견해 만지작대기 시작했고, 은호와 하민이는 오래된 탁구대를 발견하고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장난을 쳤다.
봉구는 뭔가 더 재미있는 것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혼자 조금 더 깊숙이 창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찬찬히 걸어가던 봉구의 발에 딱딱한 어떤 것이 탁 하고 걸렸다.
봉구가 부딪힌 것은 구석에 쌓인 낡은 상자들이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크기와 모양의 상자들이쌓여 있었는데 호기심이 생긴 봉구는 그 중에서 가장 큰 상자를 열어 보기로 결정했다.
“열쇠가… 어디 있을 것 같은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변을 뒤지자 먼지 쌓인 상자들 사이 나무 테이블 위에 금색 열쇠가 보였다. 열쇠는 가장 커다란 상자에 꼭 맞는 것 같았다. 덜컥! 열쇠가 돌아가고 상자가 열리자 상자 안에서 반짝이는 빛이 터져 나왔다.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봉구가 소리쳤다. 친구들은 놀라서 봉구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상자 안에는 가죽으로 둘둘 말린 두루마리가 있었다. 봉구가 그것을 집어 들고 묶여 있던 줄을 풀어내자 엄청 오래되어 보이는 지도가 나타났다. 지도는 금박으로 장식된 오래된 종이 위에 그려져 있었는데 펼쳐 보이니 마치 살아 있는 듯, 산과 강이 입체적으로 나타나면서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와아~ 이거 마법의 지도인가 봐!” 봉구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서서히 나타나는 지도 위로 빨간색 발자국 모양이 길처럼 생겨나더니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 길은 마을을 벗어나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었다.
예준이 말했다. “우리 보고 따라오라는 걸까?”
봉구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잠깐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이 지도가 우리를 안내해주는 것 같아. 어때, 같이 모험을 시작해볼까?"
친구들은 흥분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는 아이들을 인근의 오래된 저택으로 이끌었다. 이 저택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곳으로, 많은 비밀과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저택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막상 저택에 도착했지만 커다란 철문이 잠겨 있었다. 문은 아이들이 힘을 합쳐 밀어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기! 뭔가 써 있는 것 같아!”
예준이 문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자 고대 글자처럼 보이는 것들이 새겨져 있었다.
“야! 이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읽으라는 거야!”
노아가 투덜거렸지만 예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 이거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예준이는 원래 고대 역사, 문자에 관심이 많아 항상 책을 읽고 공부했던 터라 조금씩 소리 내어 글자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혜… 지혜로운... 자만이… 진정한 보물을 찾을 수 있다.”
예준이는 철문을 좀 더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문 전체에는 복잡한 장식과 상징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중앙에는 특히 눈에 띄는 문양이 있었다. 가운데 있는 조각은 지혜와 지식을 상징하는 고대의 상징 중 하나인 부엉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부엉이의 눈 아래 작은 원형이 미세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문양의 한 부분처럼 조각되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튀어나와 있는지 알기 어려운 정도였지만 원형의 돌출부는 주변의 문양과 살짝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
예준이는 조심스럽게 원형 모양을 눌렀다. 그 순간, 문양 전체가 은은하게 빛을 발하며,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정원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손을 잡고 한걸음씩 안으로 걸어갔다. 좀 더 들어가자 작은 계곡과 끊어진 다리가 보였다.
“지도를 보면 안으로 더 들어가야 해…” 펼쳐진 지도를 보여주며 봉구가 말했다.
아이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다리와 그 근처를 꼼꼼하게 살펴보던 노아가 말했다.
“이것 봐! 다리 앞에 뭔가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
“이거… 퍼즐 같아! 내가 한 번 맞춰볼게!”
평소 수학, 과학, 기술 등에 관심이 많던 노아는 흩어진 돌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복잡한 퍼즐 조각들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조각들을 맞춰 나가다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자, 무너졌던 다리가 서서히 복원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다리를 건너 지도를 따라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저택의 본 건물이 나타났다. 하지만 저택은 은회색의 털을 가진 늑대 무리들이 앞을 막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서워 서로 꼭 끌어안았다. 조용히 늑대 무리를 지켜보던 은호가 말했다.
“우리에게 으르렁거리지 않는 것을 보니,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내가 한번 이야기해 볼게. 일단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섣부르게 움직이면 저 친구들도 우리를 위협적으로 느낄수도 있으니까”
은호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우두머리로 늑대에게 조용히 다가가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아, 우린 너희를 해치러 온 게 아니야."
늑대는 한참동안 은호를 바라보았다.
눈으로 대화를 하는 듯, 늑대는 은호의 빨갛고 맑은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진심을 느꼈는지 이윽고 길을 열어주었다. 우두머리 늑대가 움직이자 무리의 다른 늑대들도 천천히 길을 비켜주었다.
“정말 고마워!” 은호가 늑대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저택의 본 건물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반짝이던 마법의 지도는 건물의 지하로 가는 계단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들은 천천히 지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어둡고 습한 기운이 올라왔다. 저택 지하는 오래된 동굴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 미끄러우니까 천천히 잘 보고 내려와” 앞서가던 예준이가 말했다.
내려가다 보니 아이들은 좁고 불안정해 보이는 통로에 도착했다. 그 통로는 유일한 통로라 돌아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었지만 통로 아래는 매우 깊고 어두운 구덩이처럼 보여 함부로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아… 길이 이거 하나인 것 같은데... 돌아가서 다른 길을 찾아봐야할까?” 노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잠자코 맨 뒤에서 지켜보던 하민이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아니야. 지나와봐서 알잖아. 이게 유일한 길이야.”
하민이는 천천히 통로 쪽으로 향했다. 이 통로가 앞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지만 오래된 나무 다리가 부서져 있어 쉽게 건너기 어려워 보였다. 하민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다리를 지탱할 무언가를 찾았다. 눈이 어둠에 좀 익숙해지자 길게 늘어진 오래된 쇠사슬과 나무 판자가 보였다.
쇠사슬을 연결하고 그 위에 나무 판자를 올려 발로 밟아보며 체크했다.
“이 정도면 우리 무게를 지탱해서 건널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잡고 있을 테니 형들 먼저 건너!”
아이들의 눈빛이 두려움에 살짝 흔들렸지만 하민이 각오한 듯 결연하게 말했다.
“할 수 있어! 내가 여기서 모두를 지켜볼게”
하민이 말에 용기를 얻은 친구들은 하나씩 다리를 건넜고 하민이가 가장 마지막으로 건넜다.
하민이의 기지와 리더십으로 아이들은 무사히 다리를 건너 마지막으로 오래된 저택의 가장 깊은곳에 도착했다. 그 앞에는 커다란 입구가 있었고 입구는 투명한 얼음 같은 것으로 막혀 있었다.봉구가 그 앞에 서자 거대한 얼음 조각은 거울처럼 무언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봉구의 눈앞에 보인 것은 봉구의 모습이 아니라, 봉구의 어린 시절 항상 무서운 꿈에 나왔던 괴물의 모습이었다. 봉구는 흠칫 놀라며 살짝 뒷걸음질 쳤다. 봉구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떨고 있던 봉구의 손을 친구들이 잡아주었다. 봉구는 손에 잡히는 따스한 느낌에 용기를 얻고 얼음에 살며
시 손을 대었다. 그러자 얼음이 빛나며 수증기처럼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열린 입구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봉구를 선두로 아이들은 안으로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회랑 같은 공간 한 가운데 정교하게 장식된 탁자가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오래된 고서가 하나 놓여있었다. 두꺼운 가죽과 세공된 보석, 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고서는 봉구가 천천히 손을 대자 부드러운 빛을 주변으로 내뿜었다. 이후 고서의 페이지들이 천천히 자동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고서는 상형문자처럼 처음 보는 문자들로 씌어져 있었지만 왜 인지 아이들은 그 책에 써 있는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글자를 읽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들
이 머리속에 펼쳐져 설명되는 느낌이었다. 책 안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주문, 사람들과 동물들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마법, 그리고 고대로부터 마을을 지켜왔던 마법사들의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아이들은 책을 품에 안고 오래된 마법의 저택을 나왔다. 저택의 뒤편으로 나오자 마법의 지도가 서서히 손에서 사라졌다.
“어어어”
놀란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자 방금까지 아이들이 탐험을 하던 저택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을로 돌아와 아이들은 할머니께 마법의 고서를 보여드렸다. 하지만 빽빽하게 적혀 있던 책 안에는 아무런 글자도 씌어 있지 않았다.
며칠 후 짧았던 여름 방학과 함께 아이들의 모험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이들은 다음 방학 때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마법 같은 여름 방학은 끝났지만, 아이들이 함께 겪은 모험과 우정은 마음 속에서 오래도록 머물러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