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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의도치 않은.

 

어느새 눈을 떠보니 나는 한 음식점 앞에 서 있었다. 옆에는 한노아와 함께. 실내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어, 예준아. 왔어?”

 

익숙하지만 안 익숙한 얼굴. 앳된 얼굴을 한 재운이 형. 오늘인 언젠지 어느정도 짐작은 가지만 정확한 확인을 위해 나는 폰을 켜 오늘이 무슨 날인지 확인했다.

 

“2019년 5월 30일..”

“머야, 남녜준? 너 왜 갑자기 멈춰서 분위기 자바?”

“어, 어 아냐. 저기 앉자 우리.”

 

생기 넘치는 노아다. 한동안 힘을 내지 못하던 한노아를 돌려놓으려 한 달간 무수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이 아이는 알지 못하겠지. 뭐, 어쨌든 나는 나를 이 시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버겁다.

 

도은호와 도은호의 구원자를 살리고 또다시 힘든 시간을 겪어 한노아를 살린 후, 마지막으로는 아이의 목숨까지. 실질적으로는 도은호, 도은호의 구원자, 한노아는 목숨을 잃지 않지만, 꿈꾸는 자가 목적을 잃고 빛을 잃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번 생으로 4명이나 구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손에 4명의 삶이 있다는 것이 내겐 너무나도 큰 사명감으로 느껴졌다. 너무나도 묵직한 짐.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무섭다.

 

“야, 오늘 왤케 애가 넋이 나갔어. 내 말 못 들었지?”

“아, 미안해요. 형. 뭐라고 했죠?”

“이 친구랑 인사하라고. 능력 좋고 성격 좋고. 두루두루 다 갖춘 애야. 친해지면 좋을 거니까 서로 인사 하라고.”

“아, 안녕하세요. 남예준이라고 합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전 도은호라고 합니다! 저보다 형이시죠? 말 놓으세요. 형님!”

 

과거로 다시 만나니 역시나 은호는 붙임성이 좋은 애라는 걸 느꼈다.

 

“응, 그러면 잘 부탁해.”

 

이번에는 꽤나 먼 과거로 떠나왔다.

 

“나 잠만 바람 쐬고 올게. 아, 아 괜찮아. 그냥 잠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거야. 응. 안 따라와도 돼.”

 

자리를 뜨는 내게 어디가냐며 같이 따라가 드릴까요? 하며 물어오는 이 애가 음악을 그만두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3번의 돌아옴. 4번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전에 2번 회귀했을 때의 공통점이 있다.

 

1. 사건을 바로 잡을 수 있는 12시간 전으로 돌아온다.

 

처음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과거로 돌아갔을 때도, 노아를 보러 시골로 내려갔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갔을 때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있지 않았다. 한 번의 실수가 생기더라도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촉박한 시간으로 기회가 주어지니 신중해야 한다.

 

2.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게 되었을 때 과거로 돌아온다.

 

교통사고는 직접적으로 겪은 사건으로써 아미 사건의 전후 상황이 완벽히 파악할 수밖에 없었고 노아 때는 리더의 말, 재운이 형의 정보, 내려가서 알게 된 노아의 상황을 파악한 후 돌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오늘의 회식 자리를 이후로 내가 알기론 요 근방으로 음악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없다. 적어도 여기 모인 사람 중에서는 말이다. 뭐, 다른 사람은 그렇다 쳐도 일단 은호는 5월 24일이 생일이니까. 오늘로부터 약 80시간 정도는 음악을 그만둘 예정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1번째 공통점이라고 말한 내용은 이제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2번째 공통점이 성립되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2년 전, 도은호가 음악을 포기하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 도은호가 꿈을 꾸게 하여준 구원자의 존재가 있다는 것, 그 구원자의 존재는 도은호가 음악을 포기함으로써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3개밖에 없다. 앞뒤 상황을 파악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정보.

 

이렇게나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 나는 은호가 어떻게 해야 어,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고 있다. 은호는 사기를 당했다는 것. 분명, 음악도 돈이 있어야 한다며 돈을 벌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꿈을 포기하게 된 결과로 자신의 소중한 사람 또한 꿈을 져버렸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도은호가 꿈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네? 저요?”

“으악 깜짝이야!!”

“오, 형 죄송해요. 그렇게 놀라실 줄은 몰랐네.”

“괜찮아.”

“그나저나 제 이름 부르신 거 아니에요?”

“아냐. 너가 잘못 들었나 보다.”

“그래요? 아.. 아닌데. 분명 내 이름 세 글자를 내가 들었는데 말이죠~”

“맞아. 너랑 친해지고 싶다고 한 거야.”

“거짓말인 것 같은데- 기분이 좋은 말이라서 그냥 넘어갈게요! 정말 저랑 친해지고 싶으세요?”

 

이게 기회일까. 사실 은호를 알게 된 이후, 특별한 접점이랄 것이 없었다. 은호는 은호의 삶을 살았으며 나는 나의 삶을 살기에 바빴으니까. 저번 생에는 이날, 이렇게 은호와 이야기한 적도 사실 없다. 은호라는 존재와의 두 번째 만남, 첫 번째 대화인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은호와 친해지면 되는 게 아닌가? 꾸준히 연락을 계속하다 보면, 이 친구가 언제 음악을 그만두는지 알게 될 테니까.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른다면 당사자와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가다 같은 시간대에서 사건을 맞닥트리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지금 내 옆에서 날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이 친구도 지금 당장은 음악을 자신이 그만두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테니까.

 

“응. 처음 딱 보자마자 성격 진짜 좋아 보였거든. 붙임성도 있고 예의도 있고 매너 좋고 말도 잘하고.”

“칭찬해 주시니까 괜히 어깨가 올라가는 기분이네요. 감사합니다. 형님.”

“내가 오늘 본 도은호라는 사람에 대해 느낀 그대로를 말한 것뿐이야.”

“형은 되게 젠틀한 것 같아요. 하는 말 하나하나가 되게 믿음직스러운 느낌. 아, 전화번호 교환하실래요?”

 

도은호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후, 조금의 대화를 더 하다 우린 다시 음식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최대한 은호와 가까워지는 것에 목표를 뒀다. 나와 은호가 꽤나 오래 자리를 옮기지 않고 대화하자, 노아도 우리의 이야기가 궁금했는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끝내고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왔다. 노아와 은호는 너무나도 잘 맞았다. 전생에 친구였나. 뭐, 하여튼. 의도치 않게 노아도 은호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꽤나 많은 연락이 오고 갔다. 어쩌다 보니 먹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음악 얘기보단 음식 얘기가 더 오고 가긴 했다. 먹어봤던 맛있는 음식 조합이나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어디가 맛집이더라. 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연락하다 보니 4일은 금방 지났고, 나는 이번 생에도 은호에게 5만원 정도의 편의점 상품권을 생일 선물로 주었다. 은호는 엄청난 감동을 받은 건지 형.. 하며 연락을 보내오더니 이내 음성녹음으로 고맙다며 노래를 불러왔다.

 

답가는 딱히 보내지 않았다. 대신 내가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선물이었다고. 편의점 가서 밥 많이 먹는 게 기억나서 보냈다고 답장해 주었다. 정말이었다. 은호에게 5만원 상당의 선물을 보내고 나니, 남은 통장 잔고로 나는 한 달 동안 작은 컵라면밖에 먹을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좋아하니까 기분은 좋네.”

 

아마, 내가 컵라면만 먹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은호가 알게 된다면 당장 남은 상품권의 돈을 모두 써서라도 내게 달려와 같이 밥을 먹자며 올 게 분명하니 절대 비밀이다.

 

그렇게 은호와 알게 된 지 1달하고 2주는 되었을까. 짧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자주 만나 대화하고 연락을 한 덕에 우리는 꽤나 가까워질 수 있었다. 노아와 셋이 만나기도 하면서 나와 은호의 사이는 당연, 노아와 은호도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며 지내게 되었다.

 

물론 은호의 구원자라는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 과거로 돌아온 이유를 잊을 만큼 재밌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 영원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역시, 이 세상은 행복이 유지되도록 만들지 않는다.

 

“형, 뭐해요?”

“나 그냥 작업하고 있지. 오늘도 작업하다 늦게 잘 것 같은데. 왜? 무슨 일 있어?”

“형. 놀라지 말아요. 저 음악 이제 그만하려고요.”

“음, 이유가 뭔지 들어볼 수 있을까?”

“어.. 음..”

“응. 괜찮아. 천천히 말해도 돼.”

“아니, 뭐. 이걸로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뭐..”

 

은호는 평소답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도은호를 알게 된 지 2달도 되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에둘러 말을 뱉어낸 적이 없는 친구다. 아마 사기를 당해서겠지. 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 만난 은호가 말해줬기에 짐작이 갔다.

 

“은호야,”

“..예 형.”

“돈 필요하니?”

“..어떻게 알았어요?”

“뭐, 직감이지. 하나만 물어볼게. 음악, 정말 관두고 싶니?”

“....”

“네 생각은 어때?”

“솔직히, 뭐. 관두고 싶진 않죠. 전 아직 음악이 좋고 재밌거든요. 아마 포기해도 후회할 거예요. 근데, 더 눈에 밟히는 건, 제가 음악을 그만두게 됨으로써 너무 속상해하고 있을 형이 하나 떠올라서. 그게 좀, 그렇죠. 이미 대판 싸우고 나와서 걱정이 좀 많이 되네요.”

“내가 돈 빌려줄게. 뭐, 그리 많지도 않지만-”

“아뇨. 형한테 돈 받을 생각 절대,”

“내 말끝까지 들어. 어차피 많은 돈도 아니야. 많이 줄 수도 없고. 그냥 준다는 건 절대 아니고. 압류 딱지 붙을 정도로 빚지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 그냥 지금 당장 살아갈 수 있는 돈이 없는 정도. 내가 도와줄게. 대신, 나중에 반드시 갚아. 너가 음악 해서 번 돈으로. 다른 길은 없어.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 다 해서 음악으로 돈 벌어. 그 돈으로 갚아.”

“...”

“나 이자까지 쳐서 갚으라고 할 거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

“...”

“대답해야지. 받을 거야 말 거야.”

“고마워요. 열심히 음악 해서 돈 벌어올게요. 10년이 지나서라도 무조건 갚아요.”

“든든하네. 다시 돌아가서 그 형한테 음악 포기 안 한다고 해. 죽어서도 음악 할 거라고. 소중한 사람 상처 주는 거 아냐. 미안하다고 사과하러 빨리 가.”

“예. 알겠어요. 형님, 고마워요!”

“계좌 보내놔라.”

 

우랑찬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하곤 전화를 끊은 은호에게서 계좌번호가 적힌 연락이 왔다. 뭐, 지금 당장 한 번에 큰돈을 턱. 하고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형편까지 되는 건 아닌지라 은호가 다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될 때까지 내 수입의 일부를 떼어줄 생각이다. 그만큼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며 달려왔다. 한노아는 다시 말도 없이 소속사에 들어갔고 그동안 힘들 거란 거 알지만 내가 한노아를 꺼낼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으니까. 그동안은 나도 푹 쉬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도은호도 살려야 하고 한노아를 돌아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저번 생의 한노아보단 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싶은 마음에 일에 미쳐 산 것도 맞지만. 1번째 삶을 살던 내가 바쁘던 건 정말 바쁨의 축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구하고 나는 우울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내겐 모두와 함께 데뷔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으니까.

 

나는 정확히 20년 11월 14일이 되는 순간, 다시 한번, 그 빌딩 지하 주차장에서 노아의 이름을 외쳤다. 나의 작업실에 노아를 불러왔고 또다시 아이의 목숨을 살렸다. 그렇게 3번째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한노아는 모르겠지만 2번째 연습생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같이 산책이나 하자며 도은호를 불러 우리가 자연스럽게 만난 그날 내가 도은호에게 플레이브를 같이 하지 않겠냐며 물었던 것처럼 은호의 의사를 물어봤고 은호는 그날처럼 흔쾌히 같이 하겠다며 내 제안에 응해주었다. 이제 아는 형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됐는데..

 

“근데 형, 저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형도 같이 해도 될까요? 실력은 보장할 수 있어요.”

“너가 보장하는 사람이라면 괜찮은 거겠지. 데려와도 돼!”

“네 형. 그럼 물어볼게요!”

“그래. 그럼 우리는 일주일 뒤에 3시까지 만나자. 그 친구도 하고 싶다고 하면 3시까지 데려오면 돼.”

 

당차게 네 하며 돌아가는 은호는 그 어느 때보다 신나 보였다. 어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은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이곳에 가만히 서 있었다. 확실히 모든 걸 놓아버린 듯 터벅터벅 걷는 뒷모습보다는 훨씬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여전히 은호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3시가 되기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은호가 꿈을 포기 하지 않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게 아니었을까. 3시가 넘어서도 연락이 안 되다가 또다시 그 새벽 텅 빈 눈을 한 은호를 만나게 될까 두려웠다.

 

“야, 올 거야. 그러니까 다리 좀 그만 떨어. 손도 입에서 떼고. 임마. 손 뜯는 버릇 없는 놈이 손톱을 뜯고 앉아있어.”

 

불안한 나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나보다. 노아의 걱정 섞인 핀잔 덕분에 조금은 차분해질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자, 어느 정도 이성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후..”

 

진정은 되었으나 여전히 불안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목에 힘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퉁-하고 내려두는데 그 순간 울리는 전화. 놀란 마음에 몸을 바로 앞으로 당겨와 화면에 뜬 발신인을 확인해 보니 010으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였다. 도은호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여보세요.”

“형! 죄송해요! 제 핸드폰이 고장나는 바람에 연락을 못 드렸어요! 저희 곧 도착해요!”

“야!”

“어우 깜짝야. 네 형.”

“너는! 너는 사람을 어? 아주 놀라게 해!”

“죄송해요. 이렇게까지 걱정하시는 줄 알았으면 미리 연락을 드릴 걸.”

“됐어. 왔으면 됐지. 정문으로 노아랑 나갈게.”

“에? 나는 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크게 한 건 없지만, 은호가 꿈을 포기하지 않아 준 덕분에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된 동료가 3명이나 더 생겼으니.

 

“어서 와! 오느라 고생 많았어. 오늘 좀 더웠지?”

“아녜요! 괜찮았어요. 아, 형. 이쪽이 채봉구 형. 설득하느라 힘들었어요.”

“..은호야.”

“만나서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는 남예준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랑 제일 친한 친구 한노아에요.”

“반가워요. 한노아라고 해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채봉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유,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대표님부터 만나 뵙고 이야기를 더 해볼까요?”

 

대표님과의 미팅은 성공적이었다. 도은호의 노래 실력은 볼 것도 없었고 채봉구라는 사람 또한 실력이 아주 출중했다. 귀여운 외모와 청량한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 대표님도 두 사람이 마음에 드셨는지 우리와 함께 같은 길을 걷지 않겠냐며 물어보셨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망설임 없이

 

“네, 하겠습니다.”

 

라며 대답했고 이 넓은 연습실은 이전보다 더욱 왁자지껄 해졌다.

 

-

 

“야, 은호야. 내가 적당히를 하랬지. 적당히를!!”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또 왜왜. 뭐. 이번에는 뭐 하지도 않았어!!”

“이 초딩들. 오느른 또 무슨 일로 싸우고 있는가- 이 한노아가! 다 들어주겐노라-”

 

어느덧 같이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된 지도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은호와 봉구가 싸우는 건 이제 별 대수롭지도 않았으며 무슨 일로 싸우냐며 중재하려는 듯 저 사이로 들어가 웃기만 하는 노아를 보는 풍경도 이젠 익숙하다. 아마 곧 나에게로 와

 

“아니 형!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맞아! 예준이 형. 형은 누가 맞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제 말이 맞죠? 채봉구가 하는 말보다는 듬직한 늑대가 하는 말이 더 신빙성 있지. 안 그래요?”

“형. 형! 내가 너보다 형이다! 임마, 형! 채봉구 형이라고 해야지 어디서 반말을-”

 

음, 오늘도 우린 화목하다.

 

“자, 그만 싸우고. 어제 대표님이랑 미팅했던 거 기억나지?”

“네. 저희 4명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한명정도만 더 있으면 좋을 것같다고요.”

“응. 맞아. 근데 사실 우리도 조금은 느끼고 있잖아? 다들 열심히 하고 있고 좋은데-”

“뭔가 심심하죠. 2프로 부족한 느낌.”

 

맞다. 나를 포함한 이 4명은 지금도 충분히 너무나도 잘해주고 있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 한 명이 빠진 듯한 허전한 느낌.

 

“그래서 한 명 정도는 더 있었으면 하는데.. 혹시 주변에 괜찮은 사람 있어?”

“음... 음....”

 

물론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들어온다고 해서 정말 괜찮을까? 싶은 사람들만 있었다. 성격이 모났다거나 실력이 안 좋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다기보다, 지금 플레이브라는 그룹을 위해 뭉친 나를 포함한 한노아, 도은호, 채봉구와 과연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하는 단순한 위문이 드는 뭐. 그런거.

 

다들 생각에 잠긴 듯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왁자지껄하던 이곳이 조용해졌다.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이 적막을 깨고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사람은

 

“이짜나.. 내가 한 명 알긴 하는데 마랴..”

“누군데요?”

“근데 아직도 잘 사라있는지를 모르겠어. 연락을 안 한 지가 꽤 된 터라.”

“음, 그렇게 오래 연락을 안 한 사람인데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형은?”

“응. 걔 진짜 다 잘하거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해. 일단 끼가 넘쳐.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도 있고 예의도 바르고. 뭐든 열심히 하는 애였어. 매력으로는 어디 가서 꿇리는 느낌은 아닌 독특한 캐릭터긴 하지.”

“형 말만 들어선 만능인데요?”

“엉. 걔 좀 만능이긴 해. 운동도 엄청 잘해써.”

“노아야, 그 친구 전화번호는 아직 알아?”

“당연하지. 한 번 연락이라도 해볼까? 진짜 괜찮은 앤데. 걔도 아이돌 엄청나게 되고 싶어 했어.”

 

꽤나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태도로 말하는 노아의 모습에 정말 괜찮은 사람이겠구나 하는 사람이 들어 한 번 연락해 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니 일순간 밝아지는 얼굴로 한번 전화해 보겠다며 연습실 밖으로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

 

5분?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행복한 듯, 설레는 듯,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얼굴에 아쉬움과 미련이 덕지덕지 묻은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연습실로 돌아온 노아는 이제 아이돌 안 할 거래. 라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우리에게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계속해 왔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네가 못 봐서 그래. 걔가 춤출 때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진짜. 어쩌다 페스티벌 강사로 초청되어서 만났었는데 진짜 막 날아다녔어. 은호가 그냥 음악이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것처럼 걔는 정말 그냥, 그냥 K팝이라는 문화를 그 자체로 즐길 줄 알았던 애야.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애가 무슨 태권도 사범님을 하겠대. 이게 말이 되냐고….”

 

너무 속이 상해 보이는 노아의 얼굴과 목소리에 봉구는 노아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내 잠시 생각하는 듯한 노아는 그 아이를 만나보러 가겠다고 일주일에 1번은 꼬박 그 친구를 찾아갔다. 2달 2주하고도 5일을 말이다.

 

-

 

“예준이 형, 노아 형 언제 온대요?”

“음.. 글쎄.. 나도 3시간 전부터 연락이 안 돼 가지고..”

“그래도 형 생일이니까 오늘은 빨리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오겠죠. 뭐.”

“근데 노아 형도 참 집요해.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설득하러 다니지. 그 정도로 안타까운가 봐요. 그 사람이.”

“응.. 그런가 봐.”

“그럼 노아 형 오기 전까지 저희는 일단 저녁이나 먹고 있죠?”

“그래. 그러자. 우리 뭐 먹을래?”

“저번엔 평냉 먹었으니까, 이번엔 무조건 칼국수에요. 평냉 배달은 맛없다고 형이 분명히 말했다.”

 

어차피 생일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있었고 저녁을 먹고 연습 조금 하다 보면 언젠가 노아는 올 테니 우린 우리끼리의 시간을 보냈다. 지각을 밥 먹듯 하는 노아지만 생일이 지나는 12시를 같이 보내기로 했으니까.

 

물론 생일 1분 전에 올 줄은 정말 몰랐지만.

 

“미안, 그래도 아직 안 늦었다.”

“진짜 형 아슬아슬하게 오시네요.”

“형-. 시간 얼마 안 남았어요. 빨리 와요.”

“어어- 미안하다. 빨리 노래부터 부르자.”

 

12시 1분 전, 생일 축하합니다- 로 시작한 노래를 기적적으로 3명이서 모여 부르기 시작했다. 타이밍 하나는 죽여줬다. 생일 축하합니다-로 노래를 끝내자마자 시간은 12시 00분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축하를 받으며 초를 부니 박수와 환호로 생일을 축하해주는 이들. 너무나도 행복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한편으론 너무 신경 쓰였다. 제대로 웃지도. 그렇다고 마음껏 속상해하지도 못하는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노아는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제 생일이라고 나름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꽤 오랜 시간 한노아를 지켜본 나로썬 마음껏 축하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이들에게 생일을 축하받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하지만, 개인적으로 생일이란 매년 돌아오는 연례행사로써 그리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보니, 축하받아서 기쁘다는 마음보다는 내 생일이라는 키워드로 굳이 자신의 힘듦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쓰였다.

 

차라리 오늘이 내 생일이 아니었다면 저런 연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면서 말이다. 한편으론, 노아를 저렇게까지 속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한 번 정도는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5. 시련이란, 반드시 겪어야 할 필연(必然)인가?

 

“지금까지 고생했어. 너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준아.”

 

이 공간. 몇 번 보진 않지만, 잊을 수 없는 향수의 공간이다. 또한 진부하게 들릴지언정 잊어본 적 없는 저 말은, 오늘이 한노아와 나의 마지막 날 임을 굳이 핸드폰 화면으로, 달력으로 날짜를 확인하지 않아도 확신하게 했다.

 

내가 한노아의 팀에서 나가게 되어 회식한 후 노아와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도 오늘부로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아니 많이 아쉬웠는데 이런 생각하는 나를 눈치챈 노아가 집에서 자고 가라며 집으로 초대했던 날이다. 괜히 잘 하지도 않던 낯간지러운 말을 하게 되던 날.

 

“있잖냐, 나는 우리가 같은 무대에서 보는 날이 언젠간 올 거라고 믿는다. 같은 그룹이 되진 못하겠지만, 같은 무대에 올라 서로 인사하고 격려도 하는 그런 동료 말이야. 포기하지 말아라?”

“..당연하지.”

“그래.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지. 저번에도 말했지만, 진짜 어디서 기회가 찾아올지 몰라.우린 열심히 해 놔야 해. 난 만약에 어디든, 나한테 연습생으로 들어오라고 하잖아? 진짜 무조건 들어가서 죽기 살기로 할 거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노아의 진심을 듣는 내내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노아는 조만간 망할 소속사에 들어가 힘든 일을 겪게 될 테니까. 이렇게까지 열심히 꿈을 꾸던 아이가 꿈을 포기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땐, 얼마나 힘들었을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미래의 자신과 내가 한 무대에 있을 걸 상상하며 영원한 동료가 되자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눈부신 아이가 다시 한번 빛을 잃게 될걸 생각하니 끔찍했다. 힘들지 않은 길로 다시 우리가 한 소속사의 연습생으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만, 그렇다면 그 소속사에 노아가 들어가지 않으면 되잖아. 그걸 막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힘들지 않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노아야. 우리. 같이 작업해 보는 건 어때? 물론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 있는 팀에서 나와서 나랑 같이 하자. 너무 갑작스러운가?”

“뭐.. 조금 놀랍긴 한데.”

“충분히 생각하고 말해줘도 돼.”

“근데 너랑 같이하는 건 좋을 것같기는 해. 조금 더 생각은 해야겠지만. 지금 나 빠지면 형들도 힘드니까. 형들한테도 물어봐야지.”

“그래. 결정하면 말해줘.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조금 더 사담을 나누다가 마지막 맥주를 기울이고 잠을 잤다. 그렇게 헤어지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노아에게서 나와 같이 일을 하겠다며 연락이 왔다. 형들이랑은 잘 마무리했다고.

 

분위기에 취해 노아가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했던 제안이 이렇게 쉽게 성공할 줄 몰랐다. 사실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으니까. 다행이었다. 노아가 나와 가까이 있다면 싸우게 되더라고 정말 적어도 그 소속사는 들어가지 않게 할 자신은 있었으니까.

 

노아와 나는 일할 때의 합이 잘 맞아서 그런지 같이 하는 작업은 언제나 순탄했다. 의견 충돌이 있어도 금방 해결이 되었고 서로를 배려해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덕에 외주로 받는 일거리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 덕에 돈이 나름 잘 벌렸다.

 

노아를 힘들지 않게 만들었다면, 도은호도 애초에 힘들지 않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은호와도 바로 컨택했다. 혹시 지금 친한 형 도와주면서 일하고 있지 않느냐고. 조금 쌩뚱맞을 수 있어도 그 작업에서 지금 손 떼고 나오라고.

 

은호는 처음에 나의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형을 나보다는 자신이 더 잘 아는데 대체 어떠한 부분에서 자신이 나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나 나는 정말 완곡하게 도은호를 향해 부탁했다. 날 믿어달라고. 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간절함에 이상하게 보일 걸 알면서도 부탁하는 거라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다.

 

몇 차례에 걸친 나의 진중한 부탁 끝에 도은호는 끝내 이해는 되지 않으나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는 이유가 있을 게 아니냐며 지금 당장은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맞냐며 확인하더니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아 보이니까 한번은 믿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한 달 뒤, 한노아는 저번 생의 자신이 말했던 페스티벌 초청자이자 강사로서 초대되어 잠시 작업실을 비우게 되었다. 그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는 은호와 바쁜가 본 지 연락을 받지 않는 노아에 오랜만에 혼자 있게 되어 오랜만에 혼자 작업실에서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역시 혼자 있으니, 노래를 만드는 행위의 재미도가 조금은 떨어졌다. 혼자 있다 보니 시간 개념을 상실하는 것도 물론이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난 건지, 어디선가 들리는 “나왔다!” 하는 목소리에 화면에서 눈을 땠다. “어 왔어-”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정말 난생처음 보는 얼굴이 노아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노아야. 누군가를 데려오려면 말을 미리 했어야지..”

“아, 미아내. 연락한다는 게 깜빠겠따. 일단 소개해 줄꼐. 이쪼근 이번 페스티벌에서 만나게 된 유하민이라는 애야. 애가 꽤 괜찮아서 너도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아 이 훤칠하고 잘생긴 다부진 몸을 가진 이 친구가 한노아를 속상하게 만드는 친구였구나.

 

“낯을 많이 가리긴 하는데, 친해지면 재밌는 애야.”

“음, 반가워요. 전 남예준이라고 해요. 앞으로 잘 지내봐요, 우리.”

“어, 엇. 네!”

“친하게 지내요ㅎㅎ.”

“ㄴ, 네! 네..!”

“프하하하-! 머야? 유하민 왜 저래?”

조금은 똑딱거리는 모습이 웃긴 지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 노아를 향해 내 귀에 들리지 않게끔 자기 몸을 노아의 뒤로 숨겨 구시렁거리는 듯했지만, 들리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니까. 훤칠한 키에 노아보다 큰 덩치로 자신을 가린다고 가려질까. 누가 봐도 ‘처음 뵙는 분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듯 노아에게 치대는 모습에서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편하게 해도 돼요.”

“아네!”

 

편하게 말을 놔도 되는데 성격상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말을 단번에 놓는다는 걸 어려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민이가 조금이나마 내게 반말을 섞어 이야기하게 된 건 이날을 이후로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민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정말, 노아가 그토록 데려오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다재다능했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귀여워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이번 생은 모두가 힘든 것 하나 없이 순탄히 돌아가는 것같아서 좋았다. 1년 가까이 잘 맞는 셋이 내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만나다 보니, 속상하고 슬픈 날보다는 미소 짓게 되는 날이 많았다.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어서 그런지 부정적인 생각이 들려고 하면 귀신같이 찾아와 애교를 피워주는 막내와 기운 차리라며 등을 도닥여주는 친구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 또한 노아와 하민이가 울적해 보이는 날이면 말을 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 줬지만 말이다.

 

동시에 은호와도 지속적인 관계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미리 해준 이야기에 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은호는 놀라서 어떻게 알았냐며 형 덕분에 돈 날리지 않을 수 있었다며 연락이 오긴 했지만, 그냥 감이었다며 대답해 주는 것이 끝이었다.

 

은호와 나는 예전처럼 금전적인 관계에 묶여있지 않아도 딱히 이유 없이 시간을 내서 자주 만나 음악 이야기를 했다. 그저 친한 형 동생의 사이로 고민을 터놓기도 하고 들어주기도 하며 돈독한 사이가 되고 나니, 은호는 내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며 봉구를 데려왔고 그 이후로 우린 2명이 아닌 3명이 만나는 날이 더 많게 되었다. 둘 다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이번 생을 열심히 따라와 주는 중이었다.

 

드디어 오늘이 왔다.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는데. 왜 진작 이런 삶을 살지 못했을까 싶다. 여러 번 살아보니 이런 날도 오고. 오늘은 대표님을 만나 뵈러 가는 날이다. 3시가 되자마자 이변 없이 재운이 형에게서 걸려 온 전화. 듣지 않아도 뻔하다. 오늘 시간이 되면 대표님을 만나러 나오라는 내용이겠지.

 

“..네?”

“어, 미안. 방금 차가 지나가서 안 들렸나 보다.”

 

아니다. 주변의 소음으로 형의 말을 못 들은 게 아니라.

 

“다름이 아니라, 아는 대표님이 이번에 아이돌 산업을 시작하셨어. 버추얼 남자 아이돌이라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줄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 데뷔곡 좀 써주라.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아이돌이라서 생각나는 게 너밖에 없었어.”

“..그룹 이름이 뭔데요..?”

 

설마. 정말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겠-

 

“플레이브.”

 

머리를 한 대 크게 맞은 기분. 플레이브로 데뷔하기 위한 첫 번째 Vand.Ent 의 연습생은 나여야만 한다. 플레이브의 곡을 써주는 작곡가가 아니라. 잠시 넋이 나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화 뒤편에서 형이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지만, 뭐라 반응할 수 없었다. 내가 저걸 어떻게 한다고 해. 내가, 아니 플레이브는 나..내가.

 

“예준아, 뭐해? 안 들려?”

“...아녜요 형…. 머리가 아파서. 죄송해요.”

“괜찮은 거니? 오늘은 약 먹고 푹 쉬어라. 야. 그래서 할 거지?”

“저.. 저한테 조금의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럼~ 아직 시간 여유 있어서 괜찮아. 그래도 일주일 안으로는 연락 다시 줘야 한다?”

“네..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게 무슨 말이야. 이게 무슨 일이야. 이 상황을 나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왜. 미래가 바뀐 걸까. 대체 왜. 원래라면 대표님과의 미팅을 위해 준비하고 나왔어야만 했다. 그렇게 플레이브를 위한 연습생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노아를 영입, 그 이후로는 은호와 봉구.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하민이까지 같이 5명이 연습생 생활을 했어야만 하는 것이 수순인데. 왜? 어째서?

 

머릿속엔 의문만이 가득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두가 꿈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왔다. 꿈을 꾸는 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모여 하나의 그룹으로 데뷔하는 것. 그렇게 되게끔 만드는 것이 나의 역할 아니었나? 그래서 이번에도 모두를 빠짐없이 데려왔는데. 대체 왜. 이전과 다른 결말을 띄게 된 오늘의 상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오늘까지 오기 위해 소비된 시간을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 대체,

 

“..설마 과거를 너무 많이 바꿔서..?”

 

사실 원래였다면 노아는 소속사에 들어가야 했고 유하민이라는 존재를 알지 못했어야 했다. 은호는 사기를 당했어야만 했고 채봉구라는 사람과 친분을 유지하지 않았어야만 했다.

 

각자의 삶의 내가 너무 많이 개입한 걸까. 그저 난 전생에 겪은 시련 없이도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뿐인데 왜 내게 이런 암담한 결과가 찾아온 것일까. 대체 뭘 알려주고 싶은 걸까. 시련 없는 성공은 없다고? 왜. 왜일까. 이를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이 이후 시간이 더 흘러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는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사기를 당하게 되어 은호에게 자신은 이제 꿈을 꾸지 않을 거라며 크게 싸우고는 연락이 되지 않는 봉구와 그런 봉구에 큰 배신감을 느끼고 음악이라는 시장에서 발을 떼고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로 사는 삶을 살아가는 은호, 나와의 작업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된 이후 이제 나이도 나이인지라 아이돌을 시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며 이대로 작곡가, 작사가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한노아. 그런 한노아를 응원하며 연습생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댄서의 길로 전향하게 된 유하민.

 

같이 데뷔하기 위해 지금껏 노력했던 나의 시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게 된 우리의 모습에 아, 내가 개입을 너무 많이 하게 된 탓에 미래가 변한 거란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겪은 모든 시련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다는 걸까. 그런 시련을 겪었기에 보상을 받은 것이었나. 행복하기만 한 삶, 그런 삶은 없는 거였다. 하나를 하고자 하면 하나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들 하지. 그러나 난 아직 이 세상의 이치가 왜 이러한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모른다.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이렇게 각자의 삶을 살게 된 이들을 응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지. 무엇이 정답일까. 그러나 난 아직 이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은데. 욕심인 걸까.

 

답은 찾지 못한 채 홀로 남은 작업실에서 잠을 청했다.

 

6. 共 : 잃고 싶지 않은 마지막 욕심. : 우리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나는 노아가 있던 팀 작업실의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마도 오늘은 2019년 4월 12일이겠지. 여기서 조금 더 기다리면 한노아가 나와 나를 반겨줄 것이다. 하나, 둘, 셋.

 

“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저희 팀 도와주기로 한 분 맞으시죠?”

 

노아와의 첫 만남.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한노아는 자신과 내가 몇 번의 만남을 걸쳐 다시 이날로 돌아온 건지 모를 것이다. 이번 생의 한노아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일 테니까. 어쩌면, 이들을 다 모은다는 게, 정말 내 욕심일 뿐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고 있으니까. 같이 하면 재밌으니까.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처음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움직였다. 열심히 꿈을 향해 달려온 우리가 한 잘못은 꿈을 꿨다는 것밖에 없으니까. 그런 이들이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놔둘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움직였던 게 함께라면, 우리가 같이 있는 미래라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행복에. 4명이었지만 잠시나마 맛볼 수 있었던 서로라는 달콤함이. 우리가 한자리에 모이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겨 버렸다.

 

뭐가 정답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5명이 되어 “플레이브”라는 하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 난 그때를 계속해서 상상하게 된다.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게 너희라면 덧없이 행복할 것 같아서. 수많은 회귀를 통해 한노아 도은호 채봉구 유하민의 소중함을 깨달아 버려서.

 

그래서,

 

“네. 안녕하세요. 남예준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노아라고 합니다.”

 

노아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린다는 노아의 말에 “나도 잘 부탁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목을 다시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 기회를 정말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이번 생을 다시 한번 달려보려 한다. 오로지 나를, 내 욕심을 위해. 조금은 이기적이어 보려고 한다. 너희라면 이해해 주겠지. 미안해. 고마워. 조금만 힘들었다가 다시 만나자. 우리.

 

-

 

난 이 팀에 들어오고 나와 노아 둘만 남아 작업하게 될 첫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날은 우리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같은 아이돌을 꿈꾸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서

 

“어, 진짜? 신기하다. 나도 아이돌 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이 바닥에 있는 건데. 통하는 게 꽤 많네. 우리.”

 

서로 간의 벽을 허물게 되는 날이니까.

 

“응. 그러게. 우리 오래 알고 지내자,”

“그래. 이렇게 의지할 사람 알고 지내면 좋지. 다시 한번 잘 부탁해. 남예준.”

“응, 나도 잘 부탁해. 한노아.”

 

-

 

“네, 형. 저 지금 친구랑 식당 앞에 도착했어요.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도은호를 처음 만나게 되는 오늘은 2019년 5월 20일. 벌써 한 달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안녕하세요! 도은호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남예준이라고 합니다.”

 

내가 더 형이라는 말에 도은호는 “말씀 편히 하셔도 돼요!”라며 말해왔고 그런 도은호의 말에 나는 그럼 너도 말을 놓으라고 하니 아이, 그래도 형님인데 어떻게 그러냐며 너스레를 떨어왔다.

 

“형님,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친하게 지내요!”

 

몇 번 대화를 주고받지 않아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은호는 참 붙임성도 좋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걸. 참, 밝고 긍정적이다.

 

“맞아. 나도 그런 음악 좋아해. 세션 듣는 재미가 있잖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나올 수밖에 없는 대화 주제인 음악으로 계속해서 말을 주고받다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내 옆으로 온 건지. 노아는 내 옆에 앉아 같이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이 모임의 자리가 마무리될 때즈음, 우리 셋은 전화번호를 공유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4일이 지나 카톡 친구 창을 들어가 보니, 생일인 친구 목록에 뜬 도은호의 프로필. 난 프로필을 누르고 들어가 편의점 상품권 5만원권을 선물로 보내고 작은 돈이지만 생일 축하한다며 연락을 남겼다.

 

[어, 형님!! 아이, 굳이 안 챙겨 주셔도 되는데]

 

라는 연락의 다음으로 온 음성 메세지에는 우렁찬 목소리의 ‘감사합니다’가 담겨있었다.

 

[아냐, 더 좋은 거 못 해줘서 미안해.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거 해줄게. 오늘 하루 잘 보내.]

 

-

 

2019년 6월 1일. 이 팀에서의 협업도 이제 끝이 난다. 조금 전, 팀원끼리의 마지막 회식을 이후로 뭔가 아쉬웠던 우리는 한노아의 짐으로 향했다. 같은 레퍼토리. 맥주와 간단한 과자 안주를 사와 테이블에 마주 앉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네 덕분에 이번 작업이 수월하게 된 것 같다는 말을 시작으로 너는 언제부터 아이돌이라는 꿈을 꾸게 되었는지까지. 옛날이라 해도 될지 모르지만, 옛날과 달라지지 않은 우리의 대화를 다시금 여기 앉아서 하고 있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너는 데뷔하게 되면 같이하고 싶은 친구는 없어?”

 

예전에는 노아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

 

“음…. 아직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가태. 워, 너랑 가치 데뷔하면 재밋겠다는 정도?”

“그거 영광이네. 뭐, 나중에는 그런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생길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고건 모루는 거지.”

“만약 생기면 넌 어떻게 할 것 같아? 노아야?”

“음... 쪼꿈 어렵네. 근데 다른 건 잘 몰라도 끝까지 설득해 볼 것 가태. 나는. 준아 너는?”

“..나도. 데려올 것 같아. 어떻게 해서라도.”

“어떠케 해서라도 라니. 너, 의외로 무서운 아이엿꾸나?”

 

날 놀리는 게 재밌는지 한바탕 웃는 노아의 모습은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애가 웃음을 잠시 잃는다는 게 마음 아프지만 나에겐 선택지가 없다. 그저 이 맥주 한 모금과 함께 씁쓸함을 조금이나마 삼키는 수밖에.

 

-

 

계속해서 만남을 유지하며 지내오니 벌써 2019년 7월 15일. 은호에게서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연락이 오는 날이 다가왔다.

 

“형, 저 음악 그만두려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적은 돈이지만 금전적인 부분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 역시나 반대해 오는 은호였지만 그만두지 말라며 설득을 끝낸 후 봉구에게로 다시 돌아가서 포기하지 않을 거라 말하라고 했다. 소중한 사람 상처 주는 거 아니라고. 이렇게만 해두면 서로가 서로에게 제일 의지가 될 둘이기에 내가 무언가를 더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달려올 것이다.

 

-

 

2019년 8월 1일. 오늘은 작업실을 이전하는 날이다. 짐을 다 정리하고 의자에 앉아 가만히 멍때리다가 달력을 보니 내일은 8월 2일이었다. 한노아가 소속사에 들어가게 되는 날. 그 사실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슬금슬금 머리를 조여오는 느낌과 함께 찾아온 두통. 집에 있는 진통제를 찾아 한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켰다. 1시간 정도가 지나니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진 않았지만,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

 

오늘은 2020년 11월 14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악착같이 살지도 그렇다고 게으르게 살지도 않았다. 그저 적당히. 내 능력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받으며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무언가를 굳이 더 하려고 하지 않았다. 작업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꽤나 익숙했고 이미 작업했던 곡들이라 그런지 예전처럼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10시가 되고 나는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 적당히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10시 반. 택시를 타고 건물에 도착해 시간을 확인해 보니 11시 45분. 저 멀리 익숙한 검정 세단이 보였다. 올라오는 분노. 격정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에 나는 진정하려 노력했다. 넘쳐나는 감정에 일을 그르치면 안 되니까.

 

어느새 신분 확인이 끝났는지 한노아가 탄 차는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고 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나는 지하 주차장을 향하여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저 멀리 보이는 빛이 꺼진 노아의 모습을 보자마자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큰 목소리로 한노아의 이름 석 자를 부르며 기다리겠다 소리쳤다.

 

역시나 건물로 들어가는 노아의 뒷모습에다 대고 끝까지 기다리겠다 소리치니 전보다 더 많이 맞았다. 그러나 맞아서 아픈 것보다 미래를 알면서도 친구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날 더 아프게 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끌려 나온 나는 건물의 반대편에 앉아 노아가 나오기를 기다렸고, 시간이 지나 건물에서 나온 한노아를 향해 마지막으로 날 한 번만 믿어달라 부탁한 뒤, 나의 작업실로 우리는 같이 돌아왔다.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당분간은 여기서 같이 지내자. 일단 오늘은 자자.”

“..응.”

 

침대 위로 노아를 눕힌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아 내가 잘 공간을 만들었다. 노아에게 잘자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잠이 오지 않아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노아야. 자?”

“...아니.”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일단 들어보고.”

 

천장을 보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엔 오늘 너무나도 힘든 일을 겪었다. 이리저리 뒤엉킨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껏 궁금했지만,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이 생각났다.

 

“왜 나한테는 소속사 들어갔다고 말 안 해줬어?”

 

노아는 나의 질문에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기 힘든 걸까 나는 잠자코 노아를 기다렸다. 이대로 대답하기 싫다면 굳이 더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그냥. 너한테는 뭔가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어. 부모님께도 그렇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데뷔하게 될 줄 알았거든. 딱 데뷔하면 놀랐지…! 하면서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지. 사실 중간에 말해주려고도 했었어. 연락할 수단을 통제당하는 바람에 결국 못했지만.”

“..그렇구나. 그럼, 누구한테 말하고 갔어?”

“같은 팀 사람들이랑 거기 들어가기 전에 초청됐었던 페스티벌에서 만난 남자애. 그리고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들 정도.”

 

페스티벌에서 만난 남자애라면 하민이다. 하민이 한테는 말했었구나.

 

“그 페스티벌에서 만난 애랑은 연락 안 해봐도 돼?”

“이제 해야지. 내일 되면 연락해 봐야 할 사람 많아.”

“그래. 천천히 연락하자. ..고생했어. 노아야.”

 

나의 말을 이후로 노아에게서 더 이상의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건 오직 조용하게 눈물을 흘리며 정말 작은 소리로 흐느끼는 신음. 다른 말은 얹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저 슬픔을 들으며 가만히 곁에 있는 것이었다.

 

노아는 바로 연락하기는 조금 두려웠는지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두 달은 지나서야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준비도 안 됐을 테니까. 그런 일을 당하고도 덤덤하게 주변에 자신에게 있던 일을 알릴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을 이후로 한 달은 밖을 나서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노아를 위해 나 또한 거의 작업실을 나가지 않고 노아와 생활했다. 너무나도 다행인 것은, 거의 일주일의 7일을 붙어 있으면서 노아에게 미소를 되찾아 주려 노력하는 만큼 노아도 닫힌 문을 서서히 열어주기 위해 노력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노아가 한 달 정도를 나가기 힘들어하는 모습에 대표님과의 미팅하러 간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3시에 걸려 올 전화에 잠시 나가서 전화를 받고 돌아와 잠깐 만나야 할 사람이 생겨 약속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멋있게 차려입고 나가는 나를 보며 어디 데이트라도 나가냐며 물어보는 노아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러 간다고 하니 순순히 믿어주는 노아에 오는 길에 맛있는 걸 사 올 테니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남겨놓으라는 말을 한 후,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아이의 이목구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차의 번호판 숫자는 무엇이었는지 안 보고도 기억할 정도로 익숙한 이 상황을 처리한 후 대표님과의 미팅을 끝냈다. 같이 하고 싶은 연습생이 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미팅하고 나와 핸드폰을 확인하니 노아에게서 닭가슴살을 사와 달라는 연락이 와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한 나는 근처 치킨집에서 치킨을 한 마리, 오늘은 명색의 크리스마스이니 분위기라도 낼 겸, 케이크를 하나 사 들고 집에 들어왔다. 운동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식단에 예민할 것을 짐작하긴 했으나 두어 대 정도를 맞아준 후 적당히 크리스마스이지 않냐며 설득하니 이 시간에 먹는 치킨은 범죄라며 구시렁거리면서도 잘 먹었다.

 

어쨌든 소속사에 출근해야 해서 당분간 지인의 부탁으로 알바를 하게 됐다는 핑계를 댔다. 알겠다던 노아는 내가 밖에 있는 동안 심심했는지, 내가 없는 동안 하민이와 자주 만나는 듯했다.

 

거듭되는 평화로운 삶이 5개월 정도가 지나, 대표님께서 내게 같이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데려와도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날이 왔다. 타이밍도 좋은 것이, 노아의 상태가 거의 다 돌아온 시기였다. 그날로 나는 곧장 노아에게로 가 지금까지의 모든 걸 있는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 소속사 연습생으로 있는데 나랑 같이 연습생 할 생각 없냐고. 아직은 무서울 수도 있지만, 두렵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나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노아는 한 번에 알겠다며 나의 제안을 승낙했고, 그다음 날 바로 미팅을 잡아 대표님과 셋이 만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 이후는 일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Vand.Ent의 연습생이 두 명이 모이고 2주 정도가 지나 찾아온 2021년 6월 25일, 30분 정도 늦은 새벽 산책을 하러 나가면서 과연 은호를 만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저 멀리 내게 인사하며 걸어오는 도은호에 안도하며 연습생으로 같이 해볼 생각 없냐 물었다. 감사하게도 은호는 별다른 반대 없이 내 제안에 바로 승낙했다.

 

이변 없이 봉구에게 물어보러 간다던 도은호는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 약속 시간 1시간 전 핸드폰을 잃어버려 연락을 하지 못했다며 전화로 사과했고 성공적인 미팅을 지나 이 연습실엔 다시 우리 4명이 자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하민이만 제대로 오면 되는데. 현재 시각 내 생일이 되기 1분 전. 아직 노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형 왜 안 오냐며 예준이 형 생일인데 늦는 거 아니냐는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벌컥- 열리는 문. 제일 먼저 보이는 건 너무나도 해맑은 한노아의 모습이었다.

 

“유하민 플레이브 한대!”

“아악 미친! 그분 누군지는 몰라도 진짜. 와 형 진짜 고생했어요!!”

“오늘부로 2달 2주하고 5일간 그 친구를 설득하기 위한 형의 여정이 끝났어요. 와- 사실 안 하나 했는데. 이걸 성공하네.”

“내가 누구냐! 한노아 아니냐~ 아아. 이게 아니지. 야야 지금 몇 시야.”

“어, 12시 되기 3초 전, 2, 1!”

 

생일 축하합니다!!!

 

아직도 내게 생일은 그리 중요한 날이 아니다. 그저 매년 지나가는 연례행사일 뿐. 내 생일을 지금껏 제대로 챙겨본 적도 없다.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겪은 모든 여섯 번의 생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여기며 나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생각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 여섯 번째 삶으로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5명을 모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저 나만의 욕심이라서. 그래서 또다시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반은 걱정으로 나머지 반은 염원으로 이날까지 기다린 건데. 이토록 바라던 순간을 맞닥트리니, 내게 그저 행복이라는 감정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너무나도 펑펑 우는 나 때문에, 나머지 셋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프흐.. 애들아. 고마워.”

 

하민이는 내 생일에 대표님과 미팅하고 나와 우리와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순간 반가운 마음에 하민아! 라며 외치는 바람에 한참을 놀림당했지만 뭐, 그 덕에 낯가림이 심한 하민이와의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기 쉬웠다.

 

앞으로 있을 미래는 이제 모른다. 그러나 운외장천(雲外蒼天). 어두운 구름 밖으로 나오면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제 무슨 일이 우리의 앞으로 다가올지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는,

 

“플레이-브!! 안녕하세요! 플레이브 입니다!”

 

앞으로 쭉 함께 할 거라는 것. 내게 일곱 번째 과거로 돌아가는 여정 따위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것.

 

 

 

“준아, 내 꿈의 동반자가 되어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형, 그때 은호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제 꿈도, 은호 꿈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 그냥 형은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에요. 나라는 사람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고 감사합니다!!”

“형을 보자마자 느꼈어요. 아, 이 사람 좋은 사람이다. 저희 오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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